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코다 쿠미 (문단 편집) ==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v_i_p__gif_by_jlegend83-d47yzuh.gif|width=100%]]}}} || [[2000년]]에 데뷔하여 2000년대 중반 섹시하면서도 멋있다라는 뜻의 신조어 에로각코이, 에로카와이를 만들어내며 [[헤이세이]]의 가희(歌姬)[* 헤이세이 시대를 풍미한 여자 아티스트를 호칭하는 별명으로, 우타히메라고도 불린다. 쉽게 말해 Diva의 일본식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로 올라섰던 아티스트. 코다 쿠미보다 더 음반을 많이 팔고, 대중적 호감도가 높고, 더 롱런한 가수는 있을지언정 코다 쿠미가 내세운 본인만의 강렬한 이미지는 일본 가요계에서 전무후무하며 이를 두고 흔히 얘기하는 아이코닉한 가수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 반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일본에서는 드문 파워풀하고 섹시한 컨셉에 시원한 가창력과 춤 실력까지 겸비해 대중들의 지지를 받으며 2000년대 중반 톱 아티스트로 자리했다. 대표작으로는 '큐티하니', 'Butterfly', '사랑의 노래', '사랑의 꽃봉우리' 등이 있으며, 섹시가수임에도 발라드 히트곡도 상당히 많다.[* 한국 일음 커뮤에서는 'D.D.D.', 'TABOO'가 압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일본에서는 마이너하게 인기 있는 곡들이라는것이 흥미로운 점.] 전성기 시절 발매한 베스트 앨범 [[BEST~first things~]]와 [[BEST~second session~]], [[Black Cherry]]는 3작 연속으로 밀리언 인증을 받으며 이중 베스트 두장은 연속으로 더블 밀리언 인증을 받는다. 코다 본인이 만들어낸 유행어 에로 각코이는 2006년 10대 유행어에 공식 등재되었으며 가수 본인 최전성기였던 2006년에는 4대 가요제에서 3연승[* 베스트 히트 가요제, 베스트 아티스트 가요제, 골든 디스크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는 이 해 사전 네티즌 투표에서 대상이 유력한 아티스트 1위에 올랐지만 정작 대상 수상에는 실패하고 최우수가창상을 수상했다. 레코드 대상에서도 대상을 못받은게 의아할 정도로, 2006년은 코다 쿠미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을 기록, 같은 해 일본 정치인, 연예인을 모두 포함한 유명인사 2위에 오르며 인지도의 정점을 찍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일본의 가요 시상식에서 수차례 대상을 수상했으며, 06년과 07년 2년 연속 오리콘 연간 아티스트 세일즈 1위에 올랐고 음악 활동 외에도 베스트 네일 부문은 물론 베스트 지니스트에서 5년 연속의 수상을 얻어 명예의 전당에 오른 기록이 있다. 2007년에는 10개 기업의 CM 모델로 발탁되어 CM 모델로서도 대활약. 코다 쿠미 특유의 까만 피부와 파격적인 노브라 패션, 화려한 메이크업과 네일등이 코다 쿠미를 상징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지금이야 노브라 패션이 국내에서도 등장하지만 여전히 소극적인 반면에, 10년도 전이었던 그 당시에는 코다 쿠미는 파격 그 자체였다. 2008년을 기점으로 구설수로 인해 하락세가 시작되었었지만 꾸준한 라이브 공연과 자기 관리로 두터운 고정팬층을 확보해 현재까지 음악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특히 1년의 시작과 끝을 투어로 시작해 투어로 마무리하는, 일명 투어 중독자로도 유명하다. 출산 이후 TV 활동이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지만 2020년을 기점으로 최근에는 TV 출연도 간간히 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